Pars Lucis

안녕들 하시냐길래

2015. 3. 23. 18:07 : People



https://t1.daumcdn.net/cfile/blog/1677F9504F86809E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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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시냐길래 올 한 해 내 삶을 되돌아봤어요. 지긋한 사계절을 말이죠.  

  

봄에는 학점을 땄어요. 공부를 한 적은 없고 학점을 땄죠. 상대평가는 상대를 고꾸라뜨려야 이기는 게임 제도예요. 꽃구경도, 축제도 제쳐놓고 공부만 했는데 B+이 떴어요. 멱살만 안 잡았지 선생님과 싸웠어요. 학점은 바뀌지 않았어요. “상대 평가여서 할 수 없다네. 네 학점을 올려주면 누군가는 내려가” 평점이 4.0이 넘는데 장학금과 거리가 멀어요. 이 학교에는 학점 괴물이 살아요. 난 고꾸라진 거죠. 누군가 머리 위에서 나를 짓밟았어요. 봄바람이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과 함께 학자금 대출 이자가 연체되었다는 문자가 찾아왔어요. 

 

 여름에는 토익 공부를 했어요. 새벽 여섯 시면 눈을 뜨고 강남역을 향해 갔어요. “이번 역은 강남, 강남 쯔기노모데세끼가. 강남, 강남이끼데쓰. 줘빵빵떼쉬---” 이 소리를 들으면 머리에 종이 땡땡 울렸어요. 이른 일곱 시 반의 파고다. 모국어를 듣기도 전에 “디렉션, 인 디스 파트” 자정까지 스터디. 해변이고 나발이고 딕테이션, 쉐도윙. 다가오는 월말, 해커스, 모질게, 시나공, 유수연과 한승태, LC를 푸는데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요. 이번에도 900점 못 넘으면 저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가 없어요. 

  

가을 바람이 불 때, 나는 편지를 쓰지 않고 자기 소개서를 썼어요. 자기 속여서 쓰는 자기소개서에 진짜 ‘나’는 없어요. 나는 김광석 노래를 좋아하는데, 나는 무심하게 걷기를 좋아하는데, 나는 주말이면 오후 두 시까지 낮잠을 자는데, 사실은 쓸 곳도 없고, 써서도 안 되죠. 다 쓰니, 나는 돼지고기가 된 느낌이었어요. 푸줏간의 붉은 조명 아래 외설적으로 엉덩이를 흔드는 돼지고기. “내 항정살이 맛있어, 내 목살은 당신 입에서 녹을 거예요.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순종적인 돼지고기예요.” 라고 외치는 정신나간 돼지고기. 

  

그리고 겨울. 첫눈이 내리기 한 주 전에 면접을 봤어요. 흑백논리적인 정장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온 몸이 떨렸어요. 면접장에 들어서는데, 면접관들이 나를 보며 하품을 해요. 그들은 내 말 허리를 잘라요. 그들과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요. 난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죠. 내 말이 그들 귓등으로 미끄러진 그날 밤, 난 스물여덟에 거구인데, 신생아처럼 울었어요. 한참 우는데 TV에서 이문세 노래가 나왔어요.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슬픔보다 기쁨이 많은 걸 알게 될 꺼야” 참 터무니없이 해맑네요. 

  

그렇게 살았어요. 사실 왜 그렇게 분주했는지, 무엇이 그렇게 애절했는지 모르겠어요. 하나 합격은 했어요. 하지만 합격해서 안녕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니, 안녕하지 않았고, 안녕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안녕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안녕이라는 것, 그런 건 애초부터 우리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우리네 삶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닐텐데. 우리네 삶이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었을텐데.  


- 2013년 12월에 걸린 건국대 대자보 "안녕들 하시냐길래" 中



우연히 걸려 넘어진 글을 주섬주섬 주워왔다.

'안녕'이라는 단어를 읽으며 '길 밖에 박아 넣은 삽', '응달 속의 먹거리'를 생각했다.

나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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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키얼 2015.03.23 23:52

    오랜만에 업뎃이라 달려왔더니 남의 글이나 퍼오고말야!
    너으 근황을 알려달라구~~~

Transient Moments

2014. 9. 17. 11:57 : People



This is a picture that I have found from my old folder of Band Carrot and the Whips. By flipping through the pictures, I soon became nostalgic of the old yet precious memories. I am thinking about how transient a life is. Every moment that I savor right now immediately becomes a moment of the past. Regardless how vivid and exciting the moment was, it passes right by and can only be recollected by the footprints, only the projections of the actual experience. 


If one does not grasp every moment, the life will flow by itself.I want to fill it with something that I truly appreciate. Everything that I have sincerely enjoyed and found meaningful became a beautiful piece of memory while all the others that I did not bothered to care remained as the pieces of repent.


At the end, we all are living lives that cannot be repeated.Every moment is an absolute piece that cannot be retrieved again. I do not want to sit back and passively spectate how my life will flow. Even if the probable outcome is failure, I want to do what I find important and meaningful. Thus, even though my life may be filled with countless failures and only a handful of success, I would appreciate it as every moment was worthy for me and for the world that I trul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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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한경직 목사의 유언

이 시간은 내가 개인적으로 우리 가족과 후손들에게 조용히 하고 싶은 말을 몇 마디 남기려고 한다. 

나는 솔직히 우리 자손들에게 남길 유산은 하나도 없다. 문자 그대로 나는 내게 속한 집 한간 땅 한 평도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이미 너희들도 알 줄 생각한다. 내가 그 동안 교회, 혹은 학교 재단 법인 이사장으로서 내 이름으로 혹 등록된 재산이 있기도 하였고 아마 현재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다 공적인 재산이고 내 것이 아니다. 


이미 대강 다 알 줄로 생각하지만 나는 본래 내 몸을 하나님께 바칠 때에 그저 온전히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주님을 따르는 한 종으로서 언제나 주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려온다: “공중의 나는 새도 집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기억되어서 이러한 주님을 따르는 나로서 무슨 재산을 소유한다고 하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부끄럽게 생각이 된 까닭이다. 이것은 물론 내 양심이요, ‘교역자’라고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 전혀 합당치 않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나로서는 그런 생활을 어떻든지 전적으로 바치는 생활을 해보려고 생각했다는 것뿐이다. 예수님께서 산상 보훈에 친히 말씀하셨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또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다 하지는 못하였지만 하여간 다해 보려고, 나는 일생토록 노력을 해 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니 내가 내 가족을 대할 때 늘 미안하고, 사실 교회를 볼 때 내 가족들이 얼마나 희생을 많이 했고, 수고를 많이 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특별히 이미 먼저 하늘 나라로 가신 혜원이 어머니, 즉 순희 어머니를 자연히 생각하게 된다. 내가 이런 신념을 가지고 교회 일을 했기 때문에 순희 어머니가 얼마나 희생을 많이 했고 고생을 많이 한 것을 늘 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생각만 해도 그저 늘 너희들 할머니[내 아내 순희 어머니]에 대해서는 미안한 것뿐이다. 나는 신의주에서 이러한 결심을 가지고 교회를 봉사하게 되니까 한 번은 어떤 나이 좀 많으신 목사님이 내게 조용히 충고하는 말씀도 들은 적이 있다. 그 목사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충고하시기를 “한목사, 그렇게만 살면 안돼요. 목사도 가족이 있고 자녀 교육도 시켜야 하겠는데 그렇게만 살면 안돼”라고 하셨다. 그런 나를 사랑해서 이렇게 충고한 선배 목사님도 계시다. 그러나 나는 그때 젊은 마음에 그런 충고가 내 귀에 들어오지는 안았다. 그래서 ‘나 혼자라도 어디 그런 생활을 해보자’ 라는 생각 가운데서 살아보겠다 결심하였다. 그러니까 결국은 그 희생은 내 가족들이 하게 된 것이고 결국은 너희들에게도 내가 미안한 것뿐이다. 


내가 우리 가족이나 후손들에게 할 말은 내가 늘 너희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아침과 저녁은 말할 것도 없고 언제나 시간 있는 대로 늘 기도를 한다. 지금도 계속한다. 또 이런 가운데서 감사한 것은 이미 돌아가신 순희 어머님도 여러 가지 가난하고, 어렵고, 외롭고, 고생스러운 교역자의 아내로서 생활하면서도 기쁘게 나와 같이 협력을 잘 하여 준 것을 생각할 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한다. 또 돌아가신 그 분에 대해서 감격한 생각은 무어라고 다 말 할 수 없다. 


또 지금 내가 보는 대로 지금 너희들도 내가 이런 생활을 하였다고 크게 원망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그 점을 언제나 감사히 생각한다. 또 그리고 내가 언제나 내 맘속에 감사히 생각하고, 하나님께 물론 감사하고, 또 내가 한 번 우리 교회에서 설교할 때에도 이런 얘기를 말한 줄 알지만 내가 늘 감사히 생각하는 것은 내 딸, 하나밖에 없는 딸 순희는 교역자의 아내가 되어서 지금 장로회신학대학의 교수로 있는 이영헌 박사의 아내가 되었고, 또 내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 혜원이는 지금 역시 목사가 되어서 미국 일리노이주 ‘얼바나 제일교회’에서 목사로써 봉사하게 된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마음속에 ‘혜원이가 장차 목사가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내가 직접 목사가 되라고 권면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오늘 보면 자기 스스로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인 줄 생각한다. 나는 늘 생각하기를 교역자는 하나님의 부름으로 되는 것이지, 누구의 권면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해서 내가 이런 권면은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불러서 이렇게 교역자를 삼은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일생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따라서 인생이 무엇인가? 사람이 사는 최고 목표가 무엇인가? 이런 점을 곰곰이 생각할 때에 점점 더 분명히 깨닫게 되는 것은 성경 말씀 그대로 인간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진리이다. 사람이 세상에 백년을 산다고 해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살았다하면 그 삶은 결국은 헛된 것이 아닌가! 그게 사실이다. 그럼으로써, 한 사람으로서 인생을 옳게 산다고 할 것이면 인생으로서 최고 목표인 곧 ‘나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하는 이 최고 목표를 잊지 말고 언제든지 그대로 살 때에 인간의 삶은 헛되지 아니하고 허무하지 아니하고 의미가 있다고 나는 지금도 꼭 생각한다. 내 삶을 가질 뿐더러 다른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볼 때에 다 그러하다. 이 목표를 잊어버리고 사는 삶은 결국은 헛된 것이다. 이제 내가 평소에 우리 교회에서도 말하고 혹은 개인으로도 여러 번 말한 줄 아는데 특별히 내가 나와 혈육의 관계에 있는 너희들에게 자연히 삶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나는 대로 몇 마디 남기기를 원한다.


(1) 첫째는,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여라.’ 하는 말이다. 다 교역자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말한 대로 부름을 입은 자라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한다. 올바른 신앙 생활이라는 말은 성경 말씀 그대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언제나 성경 중심으로 살고, 성경 중심으로 모든 일을 하면서 살자는 말이다. 내가 이 말을 제일 먼저 하는 까닭은 오늘날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열심은 있지만 그만 그릇된 길로 가는 사람이 적지 아니한 까닭이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는 물론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아는 요소가 있다. 지적인 요소가 있다. 신학적인 요소가 있다. 이 요소가 절대 필요하다. 이성을 떠난 신앙은 바른 신앙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도 너무 지적 방면으로 치우치게 되면 일종의 기독교 사상은 가질 수 있지만은 신앙 생활이 부족할 수가 있다고 나는 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론 지적으로 신학을 공부하고 성경을 연구하지만 그것이 신앙 생활의 전부인 줄 절대로 알아서는 안 된다. 머리로 하나님을 아는 것만은 부족하다. 정적요소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내 심령이 체험해야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공부하고 독서를 할뿐더러 기도가 필요하다. 묵상이 필요하다. 조용히 매일 하나님과 접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슨 일이나 하나님과 의논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계신 것을 순간, 순간 의식하며 살아 갈 수 있는 산 신앙, 예수님 말씀과 같이 ‘너희가 내 안에 있으라 내가 너희 안에 있으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열매를 맺지 아니함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이런 말씀을 언제나 잊지 않고 주안에서 생활하도록 살아야 한다. 이 말은 주님을 성령으로 충만히 마음속에 받아서 주님의 영이, 하나님의 영이 우리 마음속에 충만해서 언제나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충만할뿐더러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지혜와 모든 것의 총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적 방면에 있어서도 이 방면에만 치우치지는 말아야 한다. 어떤 이는 기도한다고 하면서 세상의 사업이나 자기의 책임을 게을리 하는 이들이 없지 않아 있다. 심지어 자녀 교육에 대해서도 게을리 하는 이들이 없지 않아 있다. 또 기도를 하는 것도 성경의 말씀대로 조용히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보다도 반드시 손뼉을 치고, 야단을 하고, 무슨 방언을 해야 은혜 받았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다. 성신의 열매와 성신의 은사를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성령의 열매도 아홉 가지이고, 성신의 은사도 아홉 가지인데 고린도 전서 12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성령의 은사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가운데 방언도 한 가지이다. 그러므로 방언만이 성령의 열매인 줄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지혜, 지식, 모든 권능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은사인 것을 기억하고 올바로 믿어야 한다. 이런 신비적 방면에도 치우쳐서는 안된다. 


또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의지적 요소가 있는 것이다. 실천이다. 실행이다. 야고보서를 읽어보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다. 봉사가 있어야 한다. 희생이 있어야 한다. 이런 실천적이 신앙을 가진 이가 부족하기 때문에 교회가 종종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이 실천 방면에 우리는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좀더 이 방면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더 사랑할 줄 알고, 좀 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줄 알고, 좀 더 화평하게 살 줄 알고, 좀 더 사회를 위해서 솔선으로 전도나 교육, 봉사 모든 방면에 솔선해야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될 것은 너무 사회 봉사에만 기울여서는 안 된다. 소위 요새말로 사회 행동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정치에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온 사회를 나 혼자 고칠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인간 개인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신앙 생활과 정치관여, 사회 참여는 조심스럽게 우리가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사회 참여를 올바로 하되 교회가 손상을 안 받고, 또 국가도 손상을 안 받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교역자라고 반드시 좋은 정치가 적 재능을 가진 것은 절대로 아니다. 신앙 있는 이도 이런 방면에 은사가 없으면 사회 참여를 바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런 점을 조심해서 그저 한 마디로 말하면 치우치지 아니하는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기 바란다.


(2) 둘째는, 선한 청지기의 원리를 분명히 깨달아서 이대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만물의 소유자다. 우리는 세상에 와서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소유를 잠깐 맡아서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이다. 청지기란 말을 요새말로 하면 관리자란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 내 것이라고 있는 것은 실상 하나님의 것으로서 하나님을 맡아 대신 관리하는 자인데 무엇이든지 관리자로써 기억할 것은 첫째, 신실해야 하고 둘째, 부지런해야 하고 셋째, 지혜가 있어서 올바로 관리를 해야하는 것이다. 또 그 뿐 아니다, 관리자는 언제나 주인에게 돌아가서 회계를 할 때가 있는데 그것을 성경의 말로 표현하면 대 심판을 받을 때가 있다. 흔히 청지기 문제를 생각할 때는 세 가지를 방면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첫째는 재능이다. 이 재능은 하나님께서 각각 사람마다 다르게 주었다. 어떤 사람은 수학을 잘한다. 어떤 사람은 그림을 잘하고 음악을 잘한다. 각각 다르다. 그러나 내 맡은 재능을 가지고 잘 발전시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우리 청지기의 사명이다. 둘째는 시간이다. 적게 맡았든지, 많이 맡았든지, 오래 살든지, 잠깐 살든지, 우리는 시간을 통해서 생명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시간은 돈이란 말이 있듯이 시간은 우리의 생명이다. 이 시간을 우리가 꼭 하나님의 뜻대로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부지런해야 되는 것이, 시간을 지킬 줄 알아야 하는 것이고 내가 맡은 사업을 정직히 해야하는 것이고 오락시간이나 하나님께 바치는 - 주일을 거룩이 지켜야 되는 것이고 또 매일 매일 기도의 시간과 성경 연구의 시간을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물론 셋째는 물질의 방면이다. 많든지 적든지 우리가 일하면 수입이 있다. 이 수입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긴 줄 기억하고 언제나 돈이 얼마가 들어오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쓸 의무가 있다. 또 이 문제를 생각할 때에는 물론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는 십일조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것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우리는 한 청지기라고 하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고 언제나 하나님께 돌아가서 대 심판을 받는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고 청지기로써 충성된 청지기들이 되기를 바란다. 재능도 묻어두지 말아야 한다. 재능을 가지고 봉사를 해야한다. 시간도 그렇고 물질도 그러하다. 


(3) 셋째는 내가 특별히 우리 교인들에게도 늘 하는 말이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큰 계명을 생각해야 되는데 그 계명은 두 가지가 아닌가, 첫째, 마음과 뜻과 정성과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다. 물론 이 첫째 계명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계명에 대해서는 올바른 신앙 생활과 선한 청지기 이 모든 말도 거기에 대한 말이다. 그런데 특별히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우리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에게 새 계명으로 준 것이 사랑의 계명이다.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랑하라 그렇게 하면 너희들이 내 제자가 된 줄을 세상 사람들이 알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 가족과 자손들은 신앙 생활을 잘 하는데 어디를 가든지 사랑의 계명을 지켜서 사랑과 화평의 생활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미안한 말이지만 어떤 이들은 열심히 교회도 다니고 신앙 생활도 하는데 싸움 잘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맞지 않고 성경의 교훈도 아니란 말이다. 잘 믿는 이는 화평하게 살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선한 싸움은 싸워야 한다. 그러나 보통 우리 교회에서 오늘날 문제가 되고 싸움이 된다고 하는 것은 보통 선한 싸움이 아니라 작은 문제로 싸운다. 또 싸움 잘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어떻든지 성경의 첫째 계명, 사랑을 잊지 않고 어디를 가나 사랑과 화평의 생활 - 예수님의 산상 복음 가운데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되어있는데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은 어디를 가나 할 수만 있으면 화평한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성경의 말씀대로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도록 힘쓰자. 우리 믿는 사람은 원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를 원수로 대하려는 사람은 많다. 모략하는 사람도 많고 거짓으로 하는 사람도 많다. 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성경 말씀대로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도 하고 화평한 생활을 하도록 힘쓰길 바란다. 특별히 우리 민족이 지금 많이 해외에 나가 사는데 골육지간에 절대로 싸우지 말고 화평한 생활을 하도록 힘쓰기를 나는 바란다. 


(4) 그리고 넷째로는, 해외에 나가 산다는 말을 내가 잠깐 했는데 우리는 어느에 가서 살든지 우리 민족을 잊지 말고 나라를 잊지 않아야 한다. 사실, 너희들 가운데 외국에 나가 사는 이들이 여럿이다. 그러나 어디 살든지 너희들은 “나는 배달의 민족”이라고 하는 것을 잊지 말아라. 또 이 세상에서 있어서 조국을 - 물론 다른 나라의 시민권을 가질 수 있지만 -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뿌리를 잊어선 안 된다. 


조국을 잊지 말자는 말을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한 두 마디로 더 계속 하고자 한다. 세계가 이제는 한나라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 가서나 살기 쉽게 되었고 또 사실, 우리 나라는 좁고 사람은 많으니 이 좁은 땅에서 항상 우리 민족이 꼭 살아야 할 것은 아닌 줄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여러 나라로 흩어지면서 발전하는 것을 나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우리 한국이 넓은 땅- 미국이나 캐나다나 남미나 좀 넓은 땅으로 가서 앞으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한 가지 내가 꼭 바라는 것은 우리 민족이 어디 가든지 내 민족은 잊어버리지 말아야하고 조국은 잊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내가 아주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외국에 나와서 살면서 조국을 비난하는 소리를 들을 때 내 마음이 얼마나 섭섭한지 알 수가 없다. 또 외국에 나와 살면서 민족간에, 골육간에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비난하고 싸우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떻든지 너희들[내 가족]은 외국에 나가 살지만 조국을 위해 기도하고,“나는 한국민족”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애국애족의 정신 가운데 그 지역 사회를 봉사하고, 그렇다고 내가 시민권을 가진 그 나라에 불충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 시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충성을 다해! 한국 사람으로서 충성을 다하면 얼마나 좋으냐! 그럼으로써 외국에 산다고 부끄럽게 생각할 것은 아니고 외국에 살면서 조국을 위해서 공헌할 수 있는 것을 공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38선이 빨리 없어지기 위해서 기도도 해야 할 것이고, 이북은 아직까지도 공산당의 손아귀에 있으니 그런 악한 정권은 소멸되고 어떻든지 참된 자유와 민주주의가 실행되는, 정의가 실행되는 대한 민국이 되기 위해서 외국에 있는 교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 내가 사는 나라의 사람들이 우리 조국에 대해서 오해하는 일이 있으면 어떻든지 그 사정을 조국에서 잘 알아보아서 혹 매스컴이 잘못 전하다 할 것이면 조국의 그 사정을 사실대로 알리는 역할을 해외에 나가서 사는 사람들이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조국이 잘 되야 우리가 딴 나라에 살아도 우리 체면이 선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민족주의라고 하는 것은 소위 영어로 ‘유브레이시즘’은 절대 아니다. 우리 민족을 올바른 태도로 사랑하면서 세계 사람과 협동해 사는 세계인으로서의 사람이 되는 동시에 우리 조국도 기억해서 조국에 대해서도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 그런 - 믿는 사람들이 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5) 그리고 내가 다섯째로, 늘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다 신앙생활을 하려고 힘쓰는데 그 신앙 생활에도 분명히 목표가 있어야 할 줄을 안다.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 최고의 목표가 무엇이냐? 물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면 내 개인으로서 먼저 생각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사도 바울의 목표를 우리가 기억해야 될 줄을 안다. 사도 바울이 회개한 후에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길 원했고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본받길 원했고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길 원했고 그리스도와 같이 살고, 그리스도와 같이 일하고 그리스도와 같이 사랑하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기를 원했고,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하기를 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믿는 사람이 내 개인으로서, 내 개인에 대한 최고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그것은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이점을 잊지 않고 신앙 생활을 해야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빗나가지 않을 줄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친히 말씀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인내, 그리스도의 지혜, 그리스도의 온갖 덕, 모든 것을 내가 배워서 그리스도의 최고의 인격에 도달할 수 있는 그 목표를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할 때에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런 일을 많이 한다고 해도 이런 인격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할 것이면 그건 쓸데가 없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좋은 나무가 되어야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먼저 그리스도와 같은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힘써야 우리 신앙생활이 빗나가지 않을 줄 생각한다. 


(6)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남기고 싶은 것은 내가 지내보니 성경의 말씀 가운데도 특별히 “심은 대로 거둔다” 라는 말씀이 과연 ‘그대로 꼭 이루어진다.’ 하는 사실을 한 가지 더 말하고 싶다. 심으면 거둔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 종류대로 거둔다.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둔다. 의를 심으면 의를 거두고 불의를 심으면 불의를 거둔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두고 미움을 심으면 미움을 거둔다. 이것은 꼭 사실이다. 거두는 것을 바라보고 심을 것은 아닌 줄 안다. 그러나 심는 것 자체는 참 좋은 일이다. 그저 심고 싶어서 심기를 바라는 것이다. 성경에는 “물위에 떡을 던지라.” 하는 말도 있다. “물위에 떡을 던지는 게 건질 것이 뭐가 있느냐?” 생각할 수 있다. 떡은 던지는 것이 좋다. 아무리 무심한 사람들에게도 호의를 베푸는 것이 좋다. 사랑을 던지는 것이 좋다. 참 이 진리는 내가 지내보는 대로 꼭 그렇다. 


내가 사실 하나님 은혜 가운데 신의주에 있을 때에도 고아원을 설립하고 아이들과 같이 일도 하고 아이들을 길러 보았는데 지금 돌아보니 얼마나 보람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내가 때로는 이 고아원에서 길러진 사람들에게 덕을 입을 때가 종종 있구나, 고아를 위해서 일을 할 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한 것은 아니다. 양심으로 보아도 대접을 받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지내보니 거두는 것이 있다고 하는 그 말뿐이다. 고아원도 그런 것이 아니고 모자원도 그렇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면 다 거두는 것이다. 


교육사업이 그렇다. 좋은 학교를 세워서 많은 사람을 양성하면 다 거두는 것이다. 사회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거두는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특별히 심는 것 가운데서 전도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이 거두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 하나를 전도를 해서 신앙이 들어가게 하면 그 사람 하나가 커서 얼마나 많은 전도를 할지 알 수 없고, 얼마나 많은 교육 사업을 할지 알 수 없고, 얼마나 많은 봉사 활동을 할지 알 수가 없고, 또 사실 많은 열매를 거두는 것을 내가 많이 보았기 때문에 내가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이 세상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그저 나그네가 길가는 것과 같은데 내가 길을 가면서 꽃씨를 뿌릴 수가 있어. 꽃씨를 뿌리면 내가 지나간 길에 꽃이 많이 필 것이다. 또 이 다음에 꽃이 피면 열매도 맺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나가는 길에 혹 좋지 못한 씨를 뿌리면 잡초가 날 뿐이야. 그러니 내가 특별히 부탁하는 것은 그저 인생길에 가면서 전도할 수 있으면 전도하고, 사랑을 베풀 수 있으면 베풀고, 도울 수 있으면 돕고, 무엇이든지 좋은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좋은 사업을 하고,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선한 씨를 심어주고 많이 뿌리도록 해야 한다. 많이 뿌려야 많이 거둘 것이 아닌가?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에 우리가 많이 뿌리면 다음 세대가 거둘 것이 아닌가? 뭐 한 세기 후에도 거둘 것 아닌가? 그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거둔다. 그러니까 어떻든지 “너희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좋은 씨를 많이 뿌리라.” 하는 그 말이다. 내가 얘기를 너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내가 말을 그치려고 한다. 그저 내가 아무래도 이 말을 그치는 동시에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밖에 없구나.


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내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세세에 돌리옵나이다.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 우리 하나님께 그저 감사하옵고, 또 감사하옵고, 또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밤낮 불러도 그저 아쉬운 것뿐입니다. 이 부족한 죄인의 일생을 생각할 때에 무엇으로 다 감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교회를 부족한 제게 맡겨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신의주에서 또 서울 영락교회까지, 교회를 은퇴한 다음에도 교회를 이렇게 계속해서 축복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또 이 시간 특별히 귀한 자손을 많이 주신 것, 또 자손들이 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교회에 봉사함을 감사드립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직접 교회에 봉사하지 아니하는 다른 자손들도 그저 똑같은 신앙심 꼭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재능도 주셨는데 그저 이 재능가지고 선한 청지기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치우치지 않고 올바른 신앙 생활 하도록 복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사랑으로 화평의 자녀들이 되고, 화평케 하는 자녀들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어딜 가서 살든지 조국을 잊어버리지 않고, 민족을 잊어버리지 않고, 애족과 애국정신을 가지고 그 지역사회에서 충성을 다하고 옳게 사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떻든지 이들의 인격이 자라고 자라서, 그래서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을 수 있는, 예수님을 닮을 수 있는 자녀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부족하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많이 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전도도하고, 봉사도 하고, 교육사업도 하고, 사회 사업도 하고, 국가와 세계에 봉사할 수 있는, 많이 심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돌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겸손한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모든 감사와 찬송을 다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약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악한 세상에 삽니다. 악한 마귀의 여러 가지 유혹과 시험과 그 계교에서, 궤휼에서 다 벗어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언제나 이들과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약할 때 특별히 이들을 붙들어 주시고, 죄지을 때 그 죄를 사하여 주시고, 잘못할 때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넘어졌으나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해서 결국은 다,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겠는데 하늘나라에서 기쁨으로 다시 만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시기만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드리옵고 이 부족한 죄인, 그저 감사와 찬송과 이 기도를 오직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속해서 날 구원해 주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 세상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그저 나그네가 길 가는 것과 같다. 길을 가면서 꽃씨를 뿌리면 내가 지나간 길에 꽃이 많이 필 것이다. 항상 좋은 씨를 뿌려라. 꼭 심은 대로 거둔다.'



이미지 출처: http://blog.daum.net/hpju00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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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없다

2014. 3. 23. 18:52 : People




용서는 없다 (2010)

No Mercy 
7.5
감독
김형준
출연
설경구, 류승범, 한혜진, 성지루, 남경읍
정보
범죄, 스릴러 | 한국 | 124 분 | 2010-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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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무엇이 비극인가

우연한 계기로 영화를 보고 여운이 남아 글을 쓰게 되었다. 분노와 울분과 잔인한 복수가 뒤엉킨 플롯의 끝에서 무엇이 비극인가 라는 한 가지 물음만이 남았다. 표면적으로는 살인 사건이 비극이지만, 그 너머에는 재력과 권력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현실이 비극이었고, 그 굴복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살인자와 그의 가족들의 삶 또한 비극이었다. 개인과 관계와 사회가 모두 비극적으로 점철된 구조. 그래서 영화 속 연출된 유혈낭자한 살인 현장의 시각적 잔인함이 부조리한 사회 구조의 잔인함을 상징하는 하나의 메타포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Life. 근본적인 부조리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살아가는 현대의 자본주의적 삶이 근본적으로 가진 부조리에 대해 생각했다. 사회는 결국 사람이 더불어 잘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의 모양일텐데, 작금의 사회는 사회가 오히려 사람을 착취하는 모양새라 씁쓸했다. '욕망'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적 사회 구조는 사람의 이기심을 증폭시키는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다. 점점 커지는 욕망과 이기심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그것과 충돌할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계속 서로 상처를 받고 상처를 입힌다.


Outro. 온기의 회복

영화에서의 유혈낭자한 화면들을 보며 상처받은 사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치유'와 '위로'라는 단어가 일상의 활력소가 되어버린 사회. 모두가 상처 입은 사회의 모습을 영화에서 보았고, 그 끝에서의 허무함을 느꼈다. 현대 사회의 구조는 유례없는 문명과 기술의 진보를 가져다 주고 있지만, 그 진보가 비단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행복과 편리는 엄연히 다르고, 행복은 오히려 한 번 애정을 담아 서로를 안아줌으로서 느껴지는 온기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영화를 보며 그런 사회적 온기의 회복, 사람다운 따뜻한 가치의 회복에 기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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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바이올린 - 미우라 아야코

남편의 친구가 어느 날 우리 집을 방문했다.

그는 얼굴도 잘 생겼으며 건강해 보였고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남편과 같이 있는 동안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시를 읊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매혹된 나는
“악기도 다룰줄 아세요?”
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악기요...?”
하더니 한참 무언가를 망설이던 그는 입을 열었다.

“실은 바이올린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이 되었지요”
나는 왜 그만 두셨냐고 물었다.

“실은 결혼 당시 제 아내한테
바이올린을 켜주었을 때...
제 바이올린 솜씨가 형편없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는 바이올린을 정말 잘하는 사람을 몇 안다고
말하더군요.
무슨 뜻이었는지 알수 있었죠.“

그 후로 그는 20년동안
단 한번도 바이올린을 잡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자기 아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20년 동안이나 바이올린을
잡은적이 없다고 생각하니 인간이란
참 상처받기 쉬운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의 남편도
얼마나 많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숨기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 그사람은 노래를 아주 잘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집에서 편한 마음으로
노래를 할수 없다 했다.
아이들도 싫어하고...
아내는 너무 시끄럽다고 한다고....

나는 진정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렇듯 정감있고 사랑이 넘치는 노래를
어째서 그사람의 아내와 아이는 들어주지 않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설사 자기의 남편이 노래를 음정이 틀리게
부른다 해도 가슴에 사랑이 있다면 기꺼이
들어주고 만족해 하는게 도리가 아닐까?

언젠가 남편이 쉬는날 집에서 조그만
의자를 만들었다.
값 비싸고 고급스런 의자와는 달랐지만 나는
그것이 나름대로 큰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마음을 전해주는 방법은
그저 아무 말없이 그 의자에 앉아서 기뻐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남편이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자랑삼아
얘기할 때, 그것이 다소 지루할지라도 조금은
감탄하며 들어주는 것 역시
그에 대한 작은 사랑이자 배려라고 생각해 왔다.

이렇듯 가정이란 별것 아닌 작은 이야기도
자랑삼아 나눌 수 있고
받아 들일수 있는 다정하고
관대한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볼품없고 조잡한 의자는
당신이나 앉으라”는 말로
남편을 외롭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그런 의미없는 말들은 남편의 가슴에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하나 더 보태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돌아간 후... 나의 남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울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구...”

내가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울게해 주었다는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계속되는 한
내 마음속에도 역시
울지 않는 바이올린이란 없을 것이다.



울지 않는 바이올린을 울게 만들어 주는 사람.

우선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고 싶고, 그런 사람들 곁에 있고 싶다.

'그 나름의 가치'를 항상 인정해 주는 사람.

수 많은 존경스러운 사람들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그들의 천재적인 역량이 아니었다.

그들의 삶은 항상 가장 낮고 힘들 때에 변함없이 믿어주는 존재로 인해 개화했다.

만사가 잘 풀릴 때의 반짝이는 찬사들은 금방 흩어지지만, 가장 소외되었을 때의 격려는 평생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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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운 때에도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치덕 치덕.
오랫만의 독백이다. 덧없는 인생이 되는 것이 무서워 안간힘을 쓰고 내가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좋아서 했던 일들의 편린을 모아 모아 나를 치덕 치덕 치장하고 있다.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에서 '할 수 있는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내 과거를 돌아보고 인생을 조율하고 있다. 나는 그저 순간 순간 맛있는 사과 한 입 베어 물듯 시간의 조각들을 채우고자 했을 뿐인데. 내 존재를 키우는 삶보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그 속에서 한껏 웃을 수 있는 삶이 좋다. 존재의 영속은 인간의 근본적인 고민이지만, 고민할 수록 덧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치덕치덕 무언가를 나의 위에 덧 바르고 있는 나를 보며 씁쓸하게 웃는다.

사람. 사람. 사람...
사람 냄새 나는 세상이 좋다. 범람하는 정보와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따라 상대적 박탈감에 절어 있는 세태를 바꾸는 데 기여하고 싶다. 사람은 각자의 모양이 있고 색이 있기 마련이고, 사람이 사는 세상도, 기술도, 음악도, 투자도 그러해야 한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천편일률적인 근대적 가치관에 의해 비추어지지 못한 '그림자'의 가치를 찾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예컨대 밝은 곳만 지나치게 밝은 '부자연스러움'을 해소하는 구조가 되어야 하고, 그 구조는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어떤 삶...
치덕 치덕 실드를 치기만 하며 일기일회의 날들을 보내고 싶지 않다. 실드를 치더라도 순간의 가치들을 모으며 살고 싶다.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한 세상에서 그림자는 명백히 비어있다. 실드가 없어도, 역량이 일천해도 하고자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작지만 의미 있는 일들을 많이 보아 왔다. 그런 일들에서 가치를 찾으면 될 일임에도 매 순간 공허한 생각과 말만 가득하다. 천편일률적인 무한 궤도의 선 위에 갇힌 자본주의를 면으로, 공간으로 펴는 일. 그 일을 통해 사람은 분명 더 행복해 질 것이고, 더불어 풍요로워 질 것이라 믿는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나 김훈의 소설처럼, 다만 행동에서 진한 감정과 생각과 말이 스며 나오는 삶을 이제 그만 간절히 바란다.

그 사람.
생각 투성이에, 버둥대며, 그렇게 또 미숙한 하루를 살아가지만, 결국 지향점은 간결하다.
함석헌 시인이 묘사한 '그 사람'의 모습을 그리며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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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는 잉여의 자리가 아니라 결핍의 자리에서 명예로워진다." - 본문 中


본문은 VOGUE지 2013년 4월호에 정형외과 의사 김현정씨가 쓰신 글이다.

개개인의 삶이 존재의 의미를 찾고 가치를 만드는 과정의 연속이라면, 그것은 그릇이기보다는 가치의 바른 전달을 위한 통로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히 가치는 한 곳에 담는 것보다 가장 필요한 곳으로 나눌 수록 더 커진다는 의미에서 더욱 통로의 삶이 아름다워 보인다. 아래는 그런 삶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담긴 좋은 글이어서 스크랩을 해 왔다.



좋은 의사로 산다는 것


<의사는 수술하지 않는다>라는 책은 사회적인 반향이 컸다. 서울시의 의료정책 담당관이 ‘의료 미니멀리즘’이라는 나의 제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지 자문을 구했고, 주변의 수많은 의사들이 ‘공감한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끝없이 불안을 조장해서 건강 염려증 환자를 만들어내는 의료과잉 사회에서 내가 제안한 건 과잉 수술과 처방을 막고 ‘의료 주체성’을 회복하자는 것. 병원 가서 몸 버리고 돈 버리지 말고 현명한 소비를 하자는 것.

 

세상엔 환자의 회복을 삶의 보람으로 느끼는 좋은 의사와 자신의 직업적 기득권 유지가 우선인 나쁜 의사들이 섞여 있다. 다행인 건 여전히 좋은 의사들이 더 많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의사가 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미국에서 한 의사 선배는 환자 설문조사 결과를 알려주며 “닥터 김 책을 읽었으면 수술을 안 받았을 텐데…”라는 반응을 전해줬다. 수술과 처방만이 유일한 ‘출구’라는 맹목적인 믿음은 의료산업 사회가 만들어낸 신화다. 잉태와 출산과 질병과 노화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우리는 병원에 얽매인 ‘병원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원시인들은 의료가 없이도 지혜롭고 꿋꿋하게 생존했으며, 의료는 인간에게 점점 더 사치재로서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든’ 의료 환경에 대한 그런 공감과 각성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 변화를 일으키리라 믿는다.

 

지난 20년 동안 나는 의사란 어떤 존재인가를 끝없이 되물었다. 정형외과 의사지만, 의사로서 나는 정형화된 삶을 살지 않았다. 여자인 내가 정형외과를 지원한 것 자체가 모교인 연세대 의대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뼈를 맞추고, 관을 끼우고… 수술 도구 자체가 통나무를 내리칠 때 쓰는 커다란 망치와 뼈에 나사를 박는 드릴, 뼈를 자르는 전기톱이니, 오죽하면 정형외과 의사를 목수나 대장장이라고 불렀을까. 몇 번의 교수 회의가 열리고, “언젠가 여자 정형외과 의사가 필요하다면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해달라”는 나의 맹랑한 의지가 받아들여져 나는 세브란스가 배출한 최초의 여자 정형외과 의사, 대한민국 1호 여자 정형외과학 교수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레지던트 때를 생각하면 ‘학도병보다는 내 신세가 낫겠지’ 자위할 만큼 혹독한 시간이었다. 세수는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생리대 갈아 끼울 시간조차 없었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의료 노동은 블루 컬러다. 청년의사들의 수련 기간은 길어지고, 꿈을 담보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사람들. 아픈 사람을 돕겠다는 초심의 불씨가 남은 의미 중심형 인간들이다.

 

다행인 건 내가 의사로서 진료실에만 앉아 있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것.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료활동을 했고, 북미 최고의 정형외과 병원인 미국 코넬 대학병원에서 3년간 의사로서 다양한 인종의 환자를 만났으며, 국내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교수 사회의 일면도 경험했다.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는 동안엔 의료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그린 나의 미래가 노회한 의과대학 과장이나 VIP 환자만 받는 병원장이 아니었다는 데 안도한다.

 

한때 ‘의료는 필요 없다’라는 회의주의에 시달린 적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아파하다 죽는다는 엄정한 진리. 하지만 무엇을 하든 내가 의사라는 본업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의사는 언제 필요한가? 통증이 심하다면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 못 걷는 사람을 도와 걷게 만들고, 활동을 증진시켜줄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행복해진다. 나는 의사가 언제 왜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통해 의업의 본질을 깨달아갔다. 의사들과 환자들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안타깝게도 의사들은 교육 과정에서 의심이나 질문, 인문적 사고가 허용되지 않는다. 토론도 설득도 없는 의사들의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화법’은 질문과 의심이 없었던 의대 교육의 부작용이다. 하지만 천년 전에도 그랬듯이 환자를 한 사람 한 사람 만나서 고통스러운 경험을 들어주고 상처를 감싸는 것이 의업의 기본이다.

 

환자와 의사는 진정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 건강이란 무엇인가? 병이란 무엇인가? 내 몸의 주권은 어디 있는가? 나는 그 새로운 관점을 아유르베다에서 배웠다. 건강은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적당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다. 치료는 의사가 하지만 치유를 일으키는 것은 변함없이 우리 몸이다. 몇 년 전 일곱 살 남자 아이가 사고로 발목 뼈를 한 뭉텅이 잃었다가 7년 만에 자라난 경과를 학회에 임상 보고한 적도 있다. 내가 아는 관록 있는 의사들은 십자인대가 파열돼도 수술하지 않는다. 인공이 자연보다 좋을 리 없기 때문이다. 나 자신 신체검사를 위한 가슴 사진 외에 X-ray도 잘 찍지 않는다. 30대에 콜로라도에서 산악 자전거를 타다 굴렀지만, 그때도 마찬가지. 오십견도 있고, 관절도 좋지 않지만, 운동으로 이겨내려 한다. 생명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자신의 몸을 치유하는 능력도 함께 지니고 태어난다. 몸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아는 게 힘일 때도 있지만,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아보 도오루 교수는 <몸의 혁명>에서 CT나 MRI로 암세포를 너무 일찍 발견해서 화학 치료를 하면 주변 세포조차 저항력을 잃어 암 발병률이 더 높아진다고 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고, 검진해서 이상 안 나오는 사람 없다. 전 국민이 ‘수업 시간에 들은 병의 증세가 마치 내 것같이 느껴진다’는 의과대학생증후군을 앓는 요즘,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하는 것보다 더 빨리 새로운 질병이 등장한다. 불안은 우리 주변에 전염병처럼 만연해 있다.

 

결국은 병을 담백하게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몸의 균형이 깨지는 게 병이고,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찾는 게 ‘치료’다. 0차 진료라고 불리는 이 자발적 행위는 건강한 식단, 운동, 휴식,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 등이다. 내 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많다는 진정한 주체로서의 자각, 그래야 기름진 음식을 먹고 콜레스테롤 약을 처방해달라고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수술이든 약이든 제때 제대로 쓰지 않으면 모두 독이다. 의료는 좀더 미니멀해져야 한다. 의사는 치유자가 아니라 치료자일 뿐.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할 때 세르파 같은 존재다. 많은 사람들은 묻는다. 병원 안가면 의사가 망하는 것 아니냐고.

 

의사는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경험 많은 의사는 세르파의 지혜로 환자에게 맞는 A, B, C, D 중 맞는 코스를 권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같이 가주는 거다. 지금의 의료계 질서로는 불가능할 것 같지만, 머지않아 창의적이고 새로운 세르파 역할을 해주는 의사들이 등장할 거라고 믿는다. 의료 시스템도 서서히 바뀔 것이다. 환자를 많이 볼수록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약을 적게 쓰고 혈압을 떨어뜨리거나, 수술을 하지 않고 병을 고치는 시스템에 혜택을 주는 쪽으로. 현대 사회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의료 정보 갭이 크지 않다. 이제는 내 몸을 주제로 다이얼로그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 수술, 그냥 약이 아니라 내가 어떤 도움을 받아들이고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의학 신기술이나 신약 뉴스는 일종의 트렌드다. 의사도 새로운 의료 기계로 군비 경쟁에 뛰어드는 걸 자제해야 할 뿐만 아니라 환자도 획기적인 신기술에 제 몸을 맡기는 모험심을 발휘할 필요가 없다. 의료에 있어서는 오래된 게 좋은 것이며, 베스트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가 낫다.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냉동 기술이 냉동 인간이라는 상상력까지 만들어냈을 때, 불로장생이 무슨 의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120년 후에 얼었다가 깨어난다 해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사라진 그 삶이 과연 행복할까?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의 소중함에 집중할 수 있다. 순교자 같은 의미 있는 죽음도 있고, 아침까지 지붕 고치다가 한낮에 의자에서 조용히 죽는 노인으로서의 이상적인 죽음도 있으며, 9.11처럼 예상치 못한 사고로 죽는 경우도 있다. 언제라도 “마음 껏 웃고 사랑하다 간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현재의 행복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의사로서 나는 부유하지 않다. 존슨앤존슨 아시아 태평양 총괄 디렉터를 거쳐 지금 내 일터인 시립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병원 관계자가 의아해했다. “압구정동을 택하지 않고 시립병원을 택하다니, 특이하시네요” 압구정행 버스는 수술을 권하는 광고판을 달고 달린다. 하지만 성형외과와 피부과가 몰려 있는 압구정동 의사들도 ‘소명 의식’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의사들이 내게 꼭 묻는 질문이 있다. “돈 안 받고 진료하고 싶어. 의료봉사 하고 싶은데, 네가 좀 알아봐줘.” 전통적으로 의료는 잉여의 자리가 아니라 결핍의 자리에서 명예로워진다.

 

앞으로 내가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가를 생각해본다. 나는 의사로서 부유한 생활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몇 년 전까지 살 곳이 마땅찮아 지방 병원 관사에서 지냈고, 지금도 서울 변두리 작은 아파트에서 남편과 소박하게 지낸다.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라는 책을 탈고하고도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아 출판도 내가 직접 했다. 정형외과 의사지만, 정형화된 인생은 재미 없지 않은가. 진부하지만, 그럼에도 의사가 가장 가슴이 뛸 때는 한 생명을 살리고, 그 생명이 내 손을 붙잡고 있을 때다.

 

몇 년 전 제약회사의 임원 자격으로 출장 가던 중에, 비행기 안에서 의사를 찾는 방송을 들었다. 연달아 방송이 이어지는 것을 보아 기내에 내가 유일한 의사였던 모양이다. 복도에는 한 중년 여성이 창백한 얼굴로 쓰러져 있었다. 눕히고 혈압을 재고 급히 응급조치를 하자, 잠시 후 그 여성이 안색을 회복하고 깨어나서 내 손을 잡았다. 그녀가 내 눈만 애타게 바라보다 말했다. “선생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사가 원하는 최고의 순간은 환자와의 그런 깊은 ‘교감의 순간’이다.

 

여전히 하루에도 몇 차례 진료실에는 “진단서만 써주세요” “약만 타가면 돼요” 하는 메마른 대화가 이어진다. 그러나 여전히 진심이 오가는 진료실을 꿈꾼다. “얼마나 아프셨어요?”라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환자의 고통이 줄어들고, 한 장의 처방전보다 ‘운동과 섭생’에 관한 심도 깊은 대화가 있는. 내 결론은 이렇다. 행복한 의사가 행복한 환자를 만들어내고 행복한 환자가 질병을 이겨낸다. 그게 의료 미니멀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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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하게 떠오르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체인.

식사 시간대에 방문하면 매장 밖 천막에서 평균 30분에서 한 시간 대기.

'얼마나 맛있길래 저긴 항상 줄서서 먹지?' 라는 인상.


전형적인 이탈리안 메뉴에 '푸짐함과 넉넉함'을 담음.

전 메뉴를 2-3인분의 양으로 19,800원에 구성, 

파티 플레이트로 다같이 덜어먹는 방식. (마치 푸짐한 잔칫상을 연상시킨다 ㅋㅋ)


셰프 출신 서상범 대표가 작은 술집 '서가'에서 

하루에 한 가지 자신있는 안주를 푸짐하게 내면서 시작. 

(원어데이의 술집형 모델? :D)


그 후 자신있는 요리들을 모아서 2008년 푸짐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서가앤쿡' 오픈.

사실 서울에 서너곳 정도 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박력있게 성장하고 있다.

2011년 대구에서 체인사업 시작 이후 1년 만에 전국 31개 체인 확장,

2013년 현재 전국 58개 체인 운영 중.


타겟 고객층인 20-30대 여성은 요식 서비스의 핵심인 맛, 가격, 감성적 요소 세 가지에 모두 민감한데, 

맛은 셰프가 '서가'에서 매일 매일 실험적으로 쌓은 검증된 메뉴 구성으로,

가격은 2-3인분 요리 조리시 절감 되는 고정비를 소비자가에 반영함으로,

감성은 로고, 인테리어, 메뉴판, 심지어 점원 호출 벨까지 신경쓰는 디테일한 디자인 역량으로 커버.


사실 가장 놀라운건 감성적 디자인 기획 역량. 


곱창집이나 순대국집은 내공 깊은 맛만 있으면 계속 가지만, 

파스타집은 맛은 기본이고 특유의 '감성적 기대감', 

예컨대 모던한 공간 인테리어에서 오는 감각적인 쾌적함이나,

요식 화보처럼 디자인 된 메뉴판이나,

케이터링 서비스처럼 생수를 병째로 서빙 받는 경험 등, 

작지만 '아 뭔가 다르다' 라는 미시적인 디테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요 메뉴들에 시그니처처럼 올라가는 계란 후라이의 모양을 딴 호출벨이 오히려 신선한 충격이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2012년 1월까지 본사 직원 4명이었고, 지금도 1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는 점.

팀이 고작 4명인데 썬앳푸드 같은 중견기업이 거대 자본을 가지고 기획한 요식 체인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10여 명의 인력으로 운영되는 신생 벤처 체인이라고 하기에 맛, 가격, 감성으로 느껴지는 소비자 경험적인 측면 뿐 아니라, 상권 분석 및 서비스 교육 등, 시스템적인 운영 또한 너무나도 매끄럽고 노련하다.


입구 인테리어.


직접 만든 일러스트들.


카운터.


2012년 화보집처럼 생긴 메뉴판.


파스타 사진이 참 놀라워서 디자이너 및 사진가가 누굴까 궁금해졌다.


필라프.


스테이크 샐러드.


후레쉬(?) 샐러드.


포장된 물을 서빙한다.


계란 후라이 아이덴티티를 본따 만든 주문벨. 

(아래 메뉴들의 계란 후라이에 주목)


시그니처 메뉴 목살 스테이크 샐러드. 

(거대한 목살이 네 덩어리라 잠시 원가가 오버하지 않을까 했는데 오버는 무슨 -_-; 13년 4월 16일 기준 이마트 국내산  목살 600g 가격 6,480원이다. 나머지 식재의 가격은 귀요미 수준.) 


김치 필라프.


심지어 까르보나라 스파게티에 들어가는 계란 후라이.


연어 샐러드 ... 는 훼이크.


소위 '잔칫상'이 연상되는 엄청난 사이즈. 저 정도면 약 8-10인분에 육박한다.


서가앤쿡 홍대점 외부 전경.



썬앳푸드 이후 오랫만에 앞날이 기대되는 요식 체인을 만났다.

썬앳푸드는 인당 단가 3만원 선의 다소 가격대가 있는 테마형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반면,

서가앤쿡은 인당 단가 1 - 1.5만원 선의 체인 레스토랑이라 세그먼트가 중복되지 않아 더욱 즐겁다.


무엇보다도 신생 벤처라 믿기지 않을만큼 탁월하고 노련한 소비자 경험 전달력이 매력적이다.

기회가 되면 서상범 대표님과 이민정 디자인 팀장님을 꼭 만나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_^



사진 출처:

http://saygj.com/3106

http://blog.daum.net/wirbel/15522980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kw01&logNo=10160903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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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에 순하게 풀린 봄나물의 맛을 알고, 밥알을 천천히 씹어 쌀알을 키운 농부의 마음까지 읽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모두 '정성'이란 말로 귀결된다.'


'서양의 이성주의 사고관이 사과의 모양이나 질감 성분을 일일이 따져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동안, 동양의 불교는 빙그레 웃으며 사과를 한 입 맛있게 베어 무는 것, 이것이 선이다.'


- Lonely Planet 2013년 3월호에 실린 소설가 백영옥님의 미황사 템플스테이 에세이 中



평생 소중하게 간직되는 아름다운 기억들은 '현재의 순간'에 어찌할 바 없이 푹 빠져 '정성'을 다했던 순간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세상에 남을 존재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현재보다는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 


사실 모두의 삶은 짧고 유한하고 한 번 뿐인 삶이니, 세상에 있는 동안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열심히 앞을 향해 달리던 사람에게 가장 소중했던 기억은 잠시 멈추어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의 기억이다. 세상에 남을 존재의 크기를 키우는 것도 물론 사람에게 중요한 가치이지만, 정말 만족스러운 삶은 역시 스스로 매 순간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감사히 음미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쉼이 필요한 시기에 쉼표를 주는 글을 읽어서 참 다행이다.


심상한 이유들로 인해 어느 새 현재에 대한 '정성'이 얼마나 그리운 단어가 되었는지. 

사람 답게 사는 것, 그저 빙그레 웃으며 맛있게 사과 한 입 베어 무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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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름다우니 세상이 아름다워라 - 이채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이 없되

내가 잡초 되기 싫으니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 없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어려워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순간이더라


귀가 얇은 자는 그 입 또한 가랑잎처럼 가볍고

귀가 두꺼운 자는 그 입 또한 바위처럼 무거운 법


생각이 깊은 자여!

그대는 남의 말을 내 말처럼 하리라


겸손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은 사람을 가깝게 하고

넓음은 사람을 따르게 하고

깊음은 사람을 감동케 하니


마음이 아름다운 자여!

그대 그 향기에 세상이 아름다워라.



이 시는 2008년 11월 10일에 여류시인 이채 님께서 발표하신 작품으로, 좋은 형님이 아끼는 카페에서 찍어서 공유해 주셨다. 여러 번 읽어 볼 수록 선생님의 소중한 인생 조언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시에서 향기가 난다는 생각을 처음 해 보았다. 


특히 요즘 마음이 어지럽고 상처가 많은 하루 하루를 살면서 이 시의 글귀들이 큰 위로가 된다. 세상을 잡초 투성이의 삭막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결국 내가 그릇되게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고, 세상을 꽃밭으로 만드는 것 또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깎아서 만들 수 있다는, 정말 간결하지만 소중한 메시지가 마음을 치유한다.


선동적이고 가벼운 말과 글의 허무함에 젖어 있을 때, 시 하나로 마음을 이렇게 부요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문학에 대한 교양이 적어 평소 좋은 시를 직접 찾아 읽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 시를 접하고 나니 그 존재를 위해 사람을 착취하는 첨단의 기술보다 이런 향기 가득한 시 하나가 사람을 더 이롭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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