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s Lucis

'Fides'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5.04.02 불나방
  2. 2011.03.07 사랑의 여정
  3. 2011.01.07 마음의 초점 (1)
  4. 2011.01.03 Chronos & Kairos (4)
  5. 2010.12.13 인연 (3)
  6. 2010.12.13 기원 - 박두진 (3)

불나방

2015. 4. 2. 13:50 : Fides

Source: http://bluesail.tistory.com/



불나방처럼 살고 있지만 쇠똥구리처럼 똥을 굴려보고 있다.

'Fid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나방  (0) 2015.04.02
사랑의 여정  (0) 2011.03.07
마음의 초점  (1) 2011.01.07
Chronos & Kairos  (4) 2011.01.03
인연  (3) 2010.12.13
기원 - 박두진  (3) 2010.12.13
Posted by JisuPark Trackback 0 Comment 0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랑의 여정

2011. 3. 7. 18:27 : Fides


Heart by seyed mostafa zamani 저작자 표시

3월 6일 주일예배에서 빌립보서 1장 9-11절을 주제로 다루었다.
그 중 특히 마음에 와 닿았던 사랑의 여정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립보서 1:9-11
 
“9 And this is my prayer: that your love may abound more and more in knowledge and depth of insight, 10 so that you may be able to discern what is best and may be pure and blameless for the day of Christ, 11 filled with the fruit of righteousness that comes through Jesus Christ—to the glory and praise of God.” Philippians 1:9-11


위의 구절들은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사도 바울이 쓴 편지 중 일부분이다. 이 구절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라는 부분이다.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을 통해 풍성해지는 것이었던가..?
 
언뜻 듣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따뜻한 ‘감성’을 먼저 자극하는 단어이다. 이성간의 사랑, 친구, 사제 혹은 가족간의 사랑, 보편적인 인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종교를 통해 가지는 절대자에 대한 사랑까지 내가 되짚어 볼 수 있는 사랑의 사례들은 모두 감성이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더 큰 감성으로 풍성하게 할 수 있는 것이지, 지식이나, 한글 성경에 ‘총명’이라고 번역된 ‘depth of insight’, 즉 통찰의 깊이로 풍성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경이 정의하는 ‘사랑’이란 것은 사랑의 시작에서 느끼는 달콤하고 따뜻한 감정적 몰입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4-7
 
“4 Love is patient, love is kind. It does not envy, it does not boast, it is not proud. 5 It is not rude, it is not self-seeking, it is not easily angered, it keeps no record of wrongs. 6 Love does not delight in evil but rejoices with the truth. 7 It always protects, always trusts, always hopes, always perseveres.”
1 Corinthians 13:4-7


위의 구절들은 이상적인 사랑을 정의한다. 사랑을 하기 위해 지식과 총명이 필요한 이유는 성경에서 정의하는 '사랑'이 결코 감정의 이끌림을 따라가는 것 만으로는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적 사랑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감정의 갈급함'을 해소시켜주지 못한다. 

사랑의 여정은 감정적 측면과 이성적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적 여정의 여행자는 누군가를 만나고, 짧은 시간의 감정적 뜨거움을 '사랑'이라 느낀다. 그리고 그 감정이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갈급함을 채워주지 못할 때, 계속적으로 상대를 바꾸어가며 그 공허한 감정을 채워주는 '이상적인 상대'를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감정의 여행자는 대개 그의 내적 속성을 키워나가지 않는다. 대신 그를 더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을 '매혹시키는' 기술을 키워나간다. 그런 시도들을 통해 그는 그 수많은 시도들이 자신의 갈급함을 더욱 갈급하고, 공허감을 더욱 공허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위에서 이야기한 '감정적 여정'이 아닌 철저한 '이성적 여정'을 통해 완성된다. 성경은 더 인내하고, 더 온유하고, 더 겸손하며, 더 배타적인 '상대'를 구하라 하지 않는다. 성경은 사랑하기 위해 자신이 그렇게 되라고 말한다.

여러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헤어지며, 자신의 감정을 충실하게 따르는 감정적 여정에 비해, 성경이 제시하는 이성성 여정은 그렇게 자유롭지도, 즐겁지도 않다. 스스로를 인내의 속박으로 묶고, 스스로 과시하고 싶은 모습들을 절제하고, 스스로의 유익도 포기해야 한다. 또한 쉽게 분노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 '불편한 것'들을 사랑이라고 하는 이유는, 세상에 '이상적 상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대상이 '천생연분'이라고 할지라도 시간이 쌓이면서 생기는 작은 마찰들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이상적 상대'와의 괴리감을 만들어낸다. 이 때, 상대와 거리를 두며 괴리감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숙도를 키움으로써 그 괴리감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고 기꺼이 품어갈 수 있는 것이 이성적 여정이 주는 가장 큰 힘이다.

이성적 여정을 통해 상대가 아닌 자신의 성숙도를 높이는 일은 분명 숙련의 영역이기에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여정 또한 숙련이 필요하다. 그 숙련의 과정에는 공부를 통해 지식을 쌓아가는 'Book Smart'의 숙련, 실천을 통해 통찰을 쌓아가는 'Street Smart'의 숙련, 그리고 지식과 통찰을 함께 쌓아가는 'Deep Smart'의 숙련이 있는데, 온전한 숙련의 모습은 지식과 총명을 겸비한 'Deep Smart'의 모습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해 그 'Deep Smart'의 모습을 그리며 기도한다. 
"사랑의 영역에서 깊은 지식과 총명을 겸비함으로 더 풍성해지기를.
서로가 상처와 가시, 공허감과 갈급함으로 가득한 추한 모습이지만,
그것을 웃으면서 당연하다고 토닥여 줄 수 있기를.
서로의 불완전한 부분을 기꺼이 품어가면서 
서로에게 따스한 사랑을 풍성하게 나누어 주기를."

'Fid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나방  (0) 2015.04.02
사랑의 여정  (0) 2011.03.07
마음의 초점  (1) 2011.01.07
Chronos & Kairos  (4) 2011.01.03
인연  (3) 2010.12.13
기원 - 박두진  (3) 2010.12.13
Posted by JisuPark Trackback 0 Comment 0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마음의 초점

2011. 1. 7. 15:24 : Fides

27-05-10 Because I Have Something To Say ~ Explored Front Page :D by Βethan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오늘도 여느 때처럼 이른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가고 있었다.
무심결에, 전철안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였다.
'어..? 무언가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허공을 바라보는 초점없는 눈, 무표정한 듯, 슬픈 듯한 입꼬리. 힘없이 처진 어깨.
모두 같은 눈과 표정과 자세를 하고 있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사원도, 일터에 나가시는 듯 작업복을 입은 아저씨도,
등교중인 중고등학생들도, 그리고 노약자석에 앉아계시는 할아버지까지도.
적어도 그 순간에는, 단 한사람의 영혼도 그 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허상에 맞춰져있는 듯해 보이는 초점과 표정과 자세.
문득 내 자신의 모습 또한 별반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온 몸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모두가 '이상적인 삶'을 꿈꾸고 그것을 목표로 살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막연한 '환상'이 되는 경우도 많다.
삶의 목표를 이루게 하는 입자들은 '현재' 라는 이름의 시간 조각들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조각들의 많은 부분을 
영혼의 초점없이 흐리멍텅하게 흘려보내고 있기 때문에 목표는 환상이 되고 만다.

바쁘게 사는 일상 속에서, '살아있음'에 기뻐하는 시간이 얼마나 적은지.
미칠 듯 좋아하는 일을 하고,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웃고,
하루에 그 순간이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적은지..
혹은, 꼭 그런 '기쁨'으로 차있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충실함'으로 차있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 그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일을 할 때도, 순간순간 그 일에 몰입하여, 무아지경으로 빠져들 수 있고,
음악을 할 때도, 연주하는 곡에 빠져서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될 수 있고.
그런 '현재에 맞춰진 영혼의 초점'을 나는 가지고 살아가는지.
그런 공허한 초점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나 자신도 있었다.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 되뇌이면서 그것을 의미없게 흘려보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충만하게 보내는 1분이, 공허한 1년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하루의 많은 부분을 초점이 풀려버린 영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운무와 같이 희석된 시간을 살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면서 
'매 순간의 선명한 색'을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의 색이 선명해야 하루의 색이 선명해지고, 하루의 색이 선명해져야, 삶의 색이 선명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에 얼마나 많은 것을 '해 내는지'는 비교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하루가 얼마나 행복하고 충만하게 자신에게 다가오는가 이다.
오늘 하루가 나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마지막 하루라도, 후회없이 살았다고 스스로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현재에 맞춰진 마음의 초점이란 그렇게 행동으로 매 순간의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Fid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나방  (0) 2015.04.02
사랑의 여정  (0) 2011.03.07
마음의 초점  (1) 2011.01.07
Chronos & Kairos  (4) 2011.01.03
인연  (3) 2010.12.13
기원 - 박두진  (3) 2010.12.13
Posted by JisuPark Trackback 0 Comment 1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ternal now 2012.08.21 00:11

    좋은글감사합니다. 매순간의미있게살아겠습니다.

Chronos & Kairos

2011. 1. 3. 16:20 : Fides


Keeping An Eye On Time by badboy69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라는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 두개가 있었다. 크로노스는 chronological, 즉 연대기적이고 순차적인 흐름을 가지는 시간의 일반적인 개념인 반면, 카이로스는 특정한 '길이'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특정한 '의미'를 지닌 시간의 간격을 지칭한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정량적(quantitative)' 시간, 카이로스는 '정성적(qualitative)' 시간이다.


하루의 반 이상이 공부/운동 시간, 가끔씩 밥먹을 시간도 배당되지 않은 무시무시한 유치원 시절 시간계획표에서부터 우리는 크로노스적 사고를 기르기 시작한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의 커리큘럼은, 연령대에 따라 교시의 길이가 다르긴 하나, 대동소이하게 블럭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학원이나 과외도 1시간에서 1시간 반, 혹은 2시간과 같이, 매우 정갈하게 나누어 떨어진다. 이와 같이 블럭화된 시간의 세계에서 살면서 우리는 점차 시간의 정량적 흐름에 익숙해진다.


크로노스적 관념을 가지고 시간을 쓰면, 매우 계획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시계가 생긴 이후로 우리는 시간을 정량적인 조각으로 나눌 수 있게 되었고, 그 조각들을 가지고 효과적으로 하루의 일과를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정해진 시각에 기상해서, 정해진 시간만큼의 일을 하고, 정해진 시각에 타인과 약속을 하고, 정해진 시각에 취침한다. 부분적인 시간의 변동성은 있겠으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가 하루 24시간, 1440분, 86400초를 '양적인' 기반으로 매우 계획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귓가에서 울리는 째깍 째깍..하는 초침소리는 이미 우리의 심장박동 만큼이나 익숙하다.


그렇지만 크로노스적 관념의 가장 크고 치명적인 폐해는 시간을 '일정한 밀도'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1초가 바로 다음의 1초와 같은 양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같은 양을 가지고 있다고 꼭 같은 '밀도로 인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1초라도, 침대맡에 노트북을 옆으로 세워두고 잉여롭게 드라마 정주행을 하고 있을 때의 1초와, 육상경기 최종 결선에서, 멀리뛰기 마지막 시도를 위해 질주해 나갈 때의 1초는 인식되는 의미와 선명도에 따라 '밀도'가 분명하게 다르다. 전자가 거의 무의식중에 흘러가는 희미한 색의 희석된 1초라면, 후자는 그 순간만큼은 시간적 인식을 잊을 정도로 강렬한 의식을 동반한 상태의 매우 선명한 색의 밀도있는 1초이다.


이와 같이 시간이 정량적인 간격이 아닌 정성적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카이로스의 개념이다. 카이로스는 철저히 '의미론적'인 관점에서 시간을 나눈다. 카이로스적 관점에서는 어떠한 일에 1초를 쓴다 하더라도, 몰입하여 쓸 수 있다면, 1시간을 쓰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을 만날 때 깊고 솔직하게 1시간을 만나는 것과 흐지부지하게 몇 년을 만나는 것은 전자가 더 카이로스 적으로 큰 시간적 '간격'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카이로스적인 관점에서의 시간의 '효율'은 얼마나 시간의 간격을 잘 쪼개어 사용하는가가 아닌, 얼마나 같은 시간동안 의미를 깊이 부여하는가 따라 달려있다.


이 블로그의 이름인 Pars Lucis 또한 카이로스적 개념과 연관이 있다. Pars Lucis는 라틴어로 빛의 조각이라는 뜻이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자칫 흘려 보내기 쉬운 순간 순간을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조각으로 굳히며 살아가고자 하는 것, 즉 카이로스적 시간의 효율의 추구를 의미한다.

'Fid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나방  (0) 2015.04.02
사랑의 여정  (0) 2011.03.07
마음의 초점  (1) 2011.01.07
Chronos & Kairos  (4) 2011.01.03
인연  (3) 2010.12.13
기원 - 박두진  (3) 2010.12.13
Posted by JisuPark Trackback 0 Comment 4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ain 2011.01.03 21:22

    난.... 어둠의 조각에 쓰는 삶의 비율을 좀 줄이고 싶다! ㅋㅋㅋㅋ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규진 2011.01.06 16:03

    오 정량적, 정성적의 의미를 시간에 비추어 보았구먼! 14일? 와이롯모임때는 농축된 1 초1 초 를 보내보장 ㅋ

인연

2010. 12. 13. 18:52 : Fides


封鎖 by HeavenlyShell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인연의 끈.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인연을 시작할 수 있음이 놀랍기만 하다.

'나눔'의 글에서 썼듯이, 나는 맑은 마음으로 나눔을 하는 '선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기적이고, 세상의 짙은 모순들을 한가득 떠안고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배타적인 의미의 '나눔'이라는 것 조차 나는 절대적으로 '나'의 관점에서 목표를 설정하는 사람이다.

그런 회색의 내가 나의 시간과 노력이 담긴 작은 조각을 나눔으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작은 아이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놀랍다.

나는 탄자니아의 에마누엘 무사 라는 아이와 방글라데시의 리마 아크텔이라는 아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사실 내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아래에 올려진 작은 프로필 카드 한장 뿐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감동시키기 어렵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공허함 조차 채워주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이 낯선 곳에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그들 만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에마누엘과 리마라는 작은 친구들을 도울 수 있을까?

처음에는 가장 나눔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 돕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이 아이들과 인연을 맺고 나니, 그것은 단순히 나의 무지요 오만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도움을 기다리는 아이들 중에는 깊은 어려움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다리가 마비되어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하루에 몇시간씩 몸을 질질 끌면서도 미소를 머금고 학교에 가는 챠드 소년,
부모를 모두 잃고 자신이 부양해야 할 어린 세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묘 앞에 앉아 절망속에서 또 하루를 투쟁하며 살아가는 12살의 말라위 소년.

사실 나는 한 명의 사람으로써 그들이 처한 상황을 헤쳐나갈 이성이나 그 상황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감성 그리고 그 깊은 절망을 이겨낼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없고, 다만 나에게 있는 것은, 처음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들 뿐이며, 이는 그저 감사할 도리 밖에 없다.

사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이처럼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과 나누는 것 또한 공허한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변함 없는 사실은 나의 잿빛 의도와는 별개로, 이 아이들과 나의 인연은 이어진다는 점이다.


작은 계기로 시작되어 나와 인연의 사슬로 이어진 나의 작은 두 친구들을 소개한다.

'Fid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나방  (0) 2015.04.02
사랑의 여정  (0) 2011.03.07
마음의 초점  (1) 2011.01.07
Chronos & Kairos  (4) 2011.01.03
인연  (3) 2010.12.13
기원 - 박두진  (3) 2010.12.13
Posted by JisuPark Trackback 0 Comment 3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0.12.17 10:02

    아... 아이들 사진보는데 울컥했네.......
    참 많은걸 누리고 사는데도, 작은 것부터 他人에게 마음쓰는 일에는 참 서툰 것 같아. 멋지다 지수야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01.07 09:20

    비밀댓글입니다

기원 - 박두진

2010. 12. 13. 02:07 : Fides


The Candle by Rickydavid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기원 - 박두진

정직한 미움을 말하되
거짓된 분노를 말하지 않게 하소서
참된 분노를 말하되
헛된 인내를 말하지 않게 하소서
솔직한 항거를 말하되
비굴한 복종을 말하지 않게 하소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이기보다는
만년을 그냥있는 의연한 바위로
고여서 오래 썩는 못물보다는
광란의 밀어치는 노도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되게
당신의 피흘림이 우리의 피흘림되게
당신의 찢어짐이 우리의 찢어짐이되게
당신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
당신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되게 하소서

일체 잠든 우리의 양심에
활활 불을 당겨 주시옵소서
일체 죽은 우리의 영혼 위에
주님의 사랑을 뜨겁게 불질러 주옵소서


----------------------------------------------

오늘 말씀 중의 이 시가 마음에 강한 자국을 남긴다.
성서에 정의된 사랑은 모든 것을 허락하고 관조하는 것이 아닌,
정직한 미움, 참된 분노, 그리고 솔직한 항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믿음은 흔들리지 않고 만년을 그냥있는 바위와 같아야 하고,
행동은 안주하지 않고 광란의 밀어치는 노도와 같은 역동성을 지녀야 한다.



정직한 미움. 참된 분노. 솔직한 항거.
만년을 그냥있는 의연한 바위.
광란의 밀어치는 노도.

'Fid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나방  (0) 2015.04.02
사랑의 여정  (0) 2011.03.07
마음의 초점  (1) 2011.01.07
Chronos & Kairos  (4) 2011.01.03
인연  (3) 2010.12.13
기원 - 박두진  (3) 2010.12.13
Posted by JisuPark Trackback 0 Comment 3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BR 2010.12.14 08:53

    설교듣고 진짜 느낀건
    난 진짜 너무 다 받아드림ㅋㅋ
    우리이제
    분노좀 하자. ㅋㅋㅋㅋㅋ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규진 2010.12.21 19:23

    참된분노 정직한미움 ㅋㅋㅋ 나야말로진정한사항을실천하고있었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