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s Lucis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저자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출판사
김영사 | 2015-02-1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자본, 경제, 사회, 문명 등을 망라한 천재 통합사상가.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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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은 어제 오늘의 화두가 아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촉발된 금융시장의 붕괴는 1970년대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시작된 자본주의 3.0의 막을 내렸다. 그 이후 많은 경제학자들과 사상가들은 새로운 자본주의, 새로운 경제관을 제시했다. 그 중 아나톨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은 기존의 시장만능주의적 관점을 버리고 '정부와 시장의 유연한 상호개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시장의 폭주를 견제할 정부의 유연성을 확보하기는 했으나 '자본주의' 라는 물질만능주의 자체에 대한 패러다임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돈에 우주적 관점을 담다.

그런 의미에서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생각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함께' 라는 키워드로 짜여진 치밀한 공생의 경제학은 비단 '나'와 '우리'를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와 '세계'까지 통합한다. 돈이라는 관점에서 본 세계관이기에 경제학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만, 종교적인 공생의 철학이 깊이 녹아있는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이라고 볼수 있을 정도로 포괄적인 통찰이 녹아있다. 그래서 이 책을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


애초에 돈은 나 혼자 잘먹고 잘살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남에게 행하는 것이 곧 나에게 행하는 것이다.


이는 클리쉐라고 여겨질만큼 모든 주류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황금률'이다. 이를 많은 사람들은 우리 속담인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혹은 서양의 'Do to others, as you would like them to do to you'와 같이 우리 모두가 친절하게 대하면 사회가 다함께 친절해질 것이다라는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조금 더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나'와 '남'을 분리하는 행위는 인류 역사에서 '돈'이라는 분리하는 매개체가 등장한 이후라는 주장이다. 


내 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이 내 것.

현재에도 남아있는 고대의 경제관념을 유지한 부족들은 '나'와 '남'을 따로 구별하지 않는다. 이들은 '우리'라는 관점 안에서 내게 필요한 것은 이웃에게 받고, 이웃에게 필요한 것 중 내게 있는 것은 당연스레 내어주며 '공생'한다. 이들의 입장에서 공동체의 소유가 곧 나의 소유이기 때문에, 소유관 또한 내 것과 당신의 것을 나눌 필요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행하는 것이 곧 나에게 행하는 것'이라는 말을 도덕적 관념이 아니라 삶의 습관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남이 굶어죽든 말든 밥을 남기는 사회.

UN 식량농업기구의 자료에 의하면 인류는 생산하는 총 식량의 1/3을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면서도, 전세계 인구의 1/7 에 해당하는 10억 여명이 밥을 굶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처해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한 부족의 공동체적 경제관에서 이러한 일들은 벌어질 수 있는 일일까? 당연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나'와 '남' 사이의 격차는 '나'와 '남'을 구별하게 되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내게 많은 것을 남에게 주고, 내가 부족한 것을 남으로부터 받는다는 개념은 비단 빈부 격차 뿐 아니라, 나에게 덜 필요한 것을 남에게 주고 꼭 필요한 것을 받는다는 관점에서 상품의 효용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돈이 나쁜 것이 아니라 돈이 심어놓은 '분리의 세계관'이 나쁜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악한 재화의 개념을 없애버리고 부족적 경제로 회귀하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돈의 개념은 결코 악하지 않다. 비록 돈이 분리의 세계관을 야기했으나, 돈이라는 매체를 통해 인류는 그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대규모 협업이 가능해졌고, 이를 통해 인류는 빠르게 진보할 수 있었다. 다만, 돈이 심어놓은 분리의 세계관으로 인해 인류는 미성숙한 방법으로 서로를 착취하고 지구를 착취해왔을 뿐이다. 


일방적 사랑이 당연함이 아님을 깨닫는 '인류의 성숙기'로 나아간다.

아이젠스타인은 이를 인류 사상의 청소년기라고 부른다. 청소년기의 아직 미성숙한 자아는 가족과 공동체와 환경적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고 일방적으로 이를 소비한다. 그러나 이제는 일방적인 소비를 하기에 인류도, 지구도 그 임계점에 달했고, 이제 인류는 성숙한 연인사이처럼 '우리'를 함께 아끼는 방향으로 다함께 나아가야 한다.



Conclusion. 공생으로.

영화 '역린'에서 인용되었던 중용 23장은 다음과 같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세상은 '당연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고 싶고, 가장 아름다운 것 또한 '당연한 것'이라 믿는다. 따라서 현재의 지속될수 없는 공멸의 세계관은 분명히 바뀌는 것이 당연하고, 이를 위해 투신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의 당연함이자 시대관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저자의 말대로 현재까지의 인류가 미성숙한 청소년처럼 배타적인 사고로 지구와 공동체의 사랑을 소비하는 것에만 급급해왔다면, 이제는 그 분리의 사상을 공동체적 사고로 바꾸어 나가는 실제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중용 23장에서 말하는 그 '작은 일'이.

Posted by JisuPark Trackback 0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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