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s Lucis

안녕들 하시냐길래

2015. 3. 23. 18:07 : People



https://t1.daumcdn.net/cfile/blog/1677F9504F86809E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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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시냐길래 올 한 해 내 삶을 되돌아봤어요. 지긋한 사계절을 말이죠.  

  

봄에는 학점을 땄어요. 공부를 한 적은 없고 학점을 땄죠. 상대평가는 상대를 고꾸라뜨려야 이기는 게임 제도예요. 꽃구경도, 축제도 제쳐놓고 공부만 했는데 B+이 떴어요. 멱살만 안 잡았지 선생님과 싸웠어요. 학점은 바뀌지 않았어요. “상대 평가여서 할 수 없다네. 네 학점을 올려주면 누군가는 내려가” 평점이 4.0이 넘는데 장학금과 거리가 멀어요. 이 학교에는 학점 괴물이 살아요. 난 고꾸라진 거죠. 누군가 머리 위에서 나를 짓밟았어요. 봄바람이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과 함께 학자금 대출 이자가 연체되었다는 문자가 찾아왔어요. 

 

 여름에는 토익 공부를 했어요. 새벽 여섯 시면 눈을 뜨고 강남역을 향해 갔어요. “이번 역은 강남, 강남 쯔기노모데세끼가. 강남, 강남이끼데쓰. 줘빵빵떼쉬---” 이 소리를 들으면 머리에 종이 땡땡 울렸어요. 이른 일곱 시 반의 파고다. 모국어를 듣기도 전에 “디렉션, 인 디스 파트” 자정까지 스터디. 해변이고 나발이고 딕테이션, 쉐도윙. 다가오는 월말, 해커스, 모질게, 시나공, 유수연과 한승태, LC를 푸는데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요. 이번에도 900점 못 넘으면 저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가 없어요. 

  

가을 바람이 불 때, 나는 편지를 쓰지 않고 자기 소개서를 썼어요. 자기 속여서 쓰는 자기소개서에 진짜 ‘나’는 없어요. 나는 김광석 노래를 좋아하는데, 나는 무심하게 걷기를 좋아하는데, 나는 주말이면 오후 두 시까지 낮잠을 자는데, 사실은 쓸 곳도 없고, 써서도 안 되죠. 다 쓰니, 나는 돼지고기가 된 느낌이었어요. 푸줏간의 붉은 조명 아래 외설적으로 엉덩이를 흔드는 돼지고기. “내 항정살이 맛있어, 내 목살은 당신 입에서 녹을 거예요.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순종적인 돼지고기예요.” 라고 외치는 정신나간 돼지고기. 

  

그리고 겨울. 첫눈이 내리기 한 주 전에 면접을 봤어요. 흑백논리적인 정장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온 몸이 떨렸어요. 면접장에 들어서는데, 면접관들이 나를 보며 하품을 해요. 그들은 내 말 허리를 잘라요. 그들과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요. 난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죠. 내 말이 그들 귓등으로 미끄러진 그날 밤, 난 스물여덟에 거구인데, 신생아처럼 울었어요. 한참 우는데 TV에서 이문세 노래가 나왔어요.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슬픔보다 기쁨이 많은 걸 알게 될 꺼야” 참 터무니없이 해맑네요. 

  

그렇게 살았어요. 사실 왜 그렇게 분주했는지, 무엇이 그렇게 애절했는지 모르겠어요. 하나 합격은 했어요. 하지만 합격해서 안녕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니, 안녕하지 않았고, 안녕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안녕하지 않을 것 같아요. 안녕이라는 것, 그런 건 애초부터 우리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우리네 삶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닐텐데. 우리네 삶이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었을텐데.  


- 2013년 12월에 걸린 건국대 대자보 "안녕들 하시냐길래" 中



우연히 걸려 넘어진 글을 주섬주섬 주워왔다.

'안녕'이라는 단어를 읽으며 '길 밖에 박아 넣은 삽', '응달 속의 먹거리'를 생각했다.

나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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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isuPark Trackback 0 Commen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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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키얼 2015.03.23 23:52

    오랜만에 업뎃이라 달려왔더니 남의 글이나 퍼오고말야!
    너으 근황을 알려달라구~~~